그녀는 직감했다. 오늘밤 이 남자와 자게 될 거라는 걸.
의식하지도 못 하는 사이 윗도리 단추가 끌러졌고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달아오른 인후의 손이 비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비은은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비틀었다.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인후의 손이 유두를 자극할 때마다 비은은 파들파들 몸을 떨었다. 그것은 두려움인 동시에 희열이었고, 쾌락인 동시에 부끄러움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감정은 그녀 역시 그를 욕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 순간 비은은 깨달았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몸이 먼저 인후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 역시 순수한 욕정을 지닌 하나의 암컷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윽고 마지막 천 조각이 비은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짧은 순간 인후의 입에선 옅은 탄성이 비어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도 비은의 몸은 자기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이 빚은 유려한 곡선의 결정체였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 얘기가 왠지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돈을 받고 몸을 판 여자가 된 것처럼 온몸이 따갑도록 부끄러웠다.
혼자만의 생각이고, 너무 비약하고 있는 거란 건 그녀도 알았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감정이 그녀 마음의 문에 다시 빗장을 채우고 말았다. 차라리 감정 없이 원 나이트 스탠드 한 거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인생의 하루 정도 가볍게 일탈한 거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흘려버릴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마음을 줄 만큼 친밀한 사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메모지처럼 북 찢어 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경계가 불분명한 존재. 그런 남자와 섹스를 하고 만 것이었다.
해서 그녀는 내심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는지 몰랐다. 자신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 그가 먼저 경계선을 넘어 다가와주길 바랐는지 몰랐다. 줄곧 당신을 안고 싶었어…… 그런 말을 기다렸던 건지도. 그랬다면 좀 더 편안한 눈길로 그를 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미처 시작도 하지 못한 인연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더 이상 그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살다가 가끔씩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잠깐의 추억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움 혹은 미련 따위의 감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그라지게 될 것이다. 시간 앞에선 인간의 모든 감정이 무력해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혹 우연히 한 번쯤 만나게 된다면 그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고맙고 미안했노라고. 잠깐이었지만 참 따뜻했었다고……
소우
한국 관능소설계를 이끌어온 제1세대 관능작가.
PC통신 시절부터 관능소설을 써온 작가는 그동안 <극한의 오르가슴>, <친구엄마에 대한 폭애> 등을 펴냈다.